세달 전, 그러니까 2020년 1월 중순 즈음 설레는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뉴욕 여행 취소기를 쓰는 날이 올줄 말이죠. 그러나 여행 서비스를 만드는 스퀘어랩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의 사태에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죠. 저처럼 여행을 취소한, 혹은 취소당한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나의 뉴욕 여행 취소 기록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저의 취소 경험담을 일지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020년 1월 18일
뉴욕행 항공권을 끊었다. 중국 베이징을 경유하는 에어차이나(중국국제항공)로 왕복 60만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금액에 티켓팅을 했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 여행 기간은 석가탄신일-근로자의 날의 콜라보로 완성된 황금연휴기간인 5월1일 부터 5월 15일까지. 2주간으로 잡았다. 봄날의 뉴욕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2020년의 여행지를 뉴욕으로 정했던 건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보고 싶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나라이지만 정작 한번도 미국 땅을 밟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고, 영화에서 보던 장소들에 실제로 가보면 지나가다가 연예인을 만난 것 같은 낯설은 익숙함이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결제하고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뉴스에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한”, “우한폐렴”.
그때까지만 해도 ‘어 나 중국 경유하는데… 에이 내 여행은 아직 4개월 반이나 남았으니까, 그 전까지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항목 | 지출 | 취소 수수료 | 돌려받은 돈 |
---|---|---|---|
✈️ 항공권 (인천-뉴욕 / 에어차이나) | 600,600원 | - | - |
Total | 600,600원 | - | - |
2020년 1월 20일
항공권을 결제했다는 것은 여행을 가겠다는 마음을 굳혔다는 의미였고, 가능한 모든 것을 예약해야 마음이 편안한 나는(나와 같은 분들은 공감할테지만)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숙소 예약에 나섰다. 항공권과 숙소는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 아니겠는가. 시간이 넉넉하다고 한가롭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관심가는 한가지에 꽂히면 밥도 안먹고 그것만 파헤치는 나의 성격 상(모든 것을 예약해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보통 이런 집중력도 같이 가지고 있다) 이틀 만에 맨해튼에서의 숙소와 미국국내선, 암트랙(미국 기차)까지 예약을 완료해버리는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항목 | 지출 | 취소 수수료 | 돌려받은 돈 |
---|---|---|---|
✈️ 항공권 (인천-뉴욕 / 에어차이나) | 600,600원 | - | - |
✈️ 항공권 (워싱턴>버팔로/아메리칸에어)+(버팔로>뉴욕/델타항공) | 285,200원(취소불가) | - | - |
🏠 한인민박 (맨해튼) | 844,800원 | - | - |
🏠 에어비앤비 (워싱턴) | 168,898원 | - | - |
🏨 호텔 (나이아가라) | 201,885원(취소불가) | - | - |
🚂 암트랙 (뉴욕>워싱턴) | 63,158원 | - | - |
Total | 2,164,541원 | - | - |
2020년 1월 23일
중국에서 폐렴이 퍼지는 속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내 중국 경유 항공권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28일
에어차이나 항공권을 환불하고 다른 항공편을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이왕 다른 항공편을 끊는 거, 샌프란시스코를 레이오버 하는 유나이티드 항공을 타기로 했다. 저렴하게 구한 에어차이나를 포기하려니 속이 조금 쓰려왔지만 지금 돈이 대수인가. 역시 안전한것이 최고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틀 밤을 비행기에서 자야 하는 강행군이 될테지만 이참에 샌프란시스코도 가보고 잘되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 정보 얻으려고 가입한 미국여행 카페에 미국 여행을 걱정하는 글을 올리게 될 줄이야 ㅠㅠ
항목 | 지출 | 취소 수수료 | 돌려받은 돈 |
---|---|---|---|
✈️ 항공권 (인천-뉴욕 / 에어차이나) | 600,600원 | -10,000원 | 590,600원 |
✈️ 항공권 (인천-뉴욕 / 유나이티드항공) | 967,600원 | - | - |
✈️ 항공권 (워싱턴>버팔로/아메리칸에어)+(버팔로>뉴욕/델타항공) | 285,200원(취소불가) | - | - |
🏠 한인민박 (맨해튼) | 844,800원 | - | - |
🏠 에어비앤비 (워싱턴) | 168,898원 | - | - |
🏨 호텔 (나이아가라) | 201,885원(취소불가) | - | - |
🚂 암트랙 (뉴욕>워싱턴) | 63,158원 | - | - |
Total | 2,531,541원 | -10,000원 | 590,600원 |
2020년 2월 5일
유럽 등 여행지에서 동양인 혐오가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큰 돈과 많은 시간을 들여 떠나는 여행이건만, 여행지에서 험한 일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 즈음이었으나 취소불가로 예약한 예약건들과 취소수수료가 떠올라 쉽사리 결정 할 수가 없었다.
여행을 갈 것인가 취소할 것인가. 지난 2주 동안 밥먹고 잠자고 일 하는 시간을 빼놓고 항상 이 고민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다녀와서 코로나에 걸린다면, 나는 젊고 건강하니 나을 수 있더라도 우리 회사 사람들과 나와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격리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역시 취소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한가지 희망은 봄이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코로나가 점점 사그라드는 것. 그것 뿐이었다.
2020년 3월 1일
미국이 한국의 대구, 경북 지역의 자국민 여행을 4단계로 격상시키면서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다.
한국으로의 여행을 여행재고인 3단계로 변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진 조치였다.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조치는 아니었으나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새벽까지 기다려서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게 될 줄이야.
2020년 3월 2일
뉴욕에 확진자가 2명으로 늘었다. 해외여행력이 없는 남성이라 지역감염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돌기 시작했다(이 때 이미 시작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인천-뉴욕 항공권의 일정이 변경되었다. 미국 항공사들이 인천과 미국을 오가는 항공편을 대폭 축소시키기 시작하면서 내 일정에도 영향이 온 것이다. 그 때문에 원래 180,000원이던 내 항공권 취소 수수료는 1만원(발권 수수료)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항공권을 취소할 것인지 대체항공편을 찾아볼 것인지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2020년 3월 7일
여행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왜 하필 내가 미국 여행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유행을 하는 것인가.
파리 북역에서 사기를 당하고, 중국 공항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고, 폭설 때문에 영국 경유가 취소되어 난데없이 홍콩 경유로 항공권이 바뀐 적은 있어도 전염병으로 여행이 취소되는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 또한 여행이 주는 수 많은 교훈 중 한가지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도 한편의 Unexpected journey 아니겠는가.
항공권 취소 수수료는 거의 없게 되었지만 취소불가로 예약한 미국 국내선 항공권과 나이아가라의 호텔은 아직 그대로 취소불가 상태였다.
미국여행 카페에는 취소불가건을 취소했다는 후기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동시에 나라를 팔아(?) 취소를 시도하는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의 사례가 기사화되기 시작했다(그르지 맙시다 증말루).
한 푼이라도 건져야 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우선 나이아가라 호텔을 취소해줄 수 있는지 예약대행사에 문의를 해봤다. 전화 연결은 무척 오래걸렸지만 상담원은 친절했다. 예약대행사에서 호텔측으로 연락을 해볼테니 며칠 기다려달라는 답변을 듣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를 며칠.
호텔측에 문의해보았으나 취소를 해줄 수 없다는 답변 메일을 받았다.
이대로 수십만원의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인가..
포기하지 말고 호텔측으로 직접 메일을 보내보기로 했다. 애초에 취소불가 상품을 예약한 것은 나였으나, 코로나가 퍼지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항공 스케쥴도 취소된 현재 상황을 호텔 측에서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2020년 3월 9일
호텔측으로부터 답변이 왔다!
아주 심플하고도 친절하게 패널티 없는 취소를 해줄테니 예약대행사에 연락을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사랑해요!😭. 다음번 여행에 꼭 방문할게요!
항공권과 취소불가 호텔을 무사히 취소하고 난 뒤에서야 취소가 가능한 그 외 항목들을 취소했다.
한인민박은 10%의 수수료를 공제했고, 취소가 불가능할줄 알았던 암트랙은 꽤 많은 수수료를 공제 하고 환불을 해주었다.
취소수수료로 쓰인 공제금은 총 124,438원, 취소불가인 미국 국내선 항공권이 285,200원으로 현재까지 이번 여행으로 손해 본 금액은 409,638원이다.
이 글을 쓰던 중 방금 미국 국내선 항공권을 예약한 예약대행사에 연락을 해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의량 폭증으로 출발 7일 이내의 예약에 대해서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안내멘트를 끝으로 통화가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연락을 계속 시도해볼 생각이다. 미국 국내선 항공편도 현재 항공 스케쥴의 일부가 변경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적어도 크레딧으로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항목 | 지출 | 취소 수수료 | 돌려받은 돈 |
---|---|---|---|
✈️ 항공권 (인천-뉴욕 / 에어차이나) | 600,600원 | -10,000원 | -590,600원 |
✈️ 항공권 (인천-뉴욕 / 유나이티드항공) | 967,600원 | -10,000원 | 957,600원 |
✈️ 항공권 (워싱턴>버팔로/아메리칸에어)+(버팔로>뉴욕/델타항공) | 285,200원(취소불가) | -285,200원 | 0원 |
🏠 한인민박 (맨해튼) | 844,800원 | -84,480원 (10%) | 760,320원 |
🏠 에어비앤비 (워싱턴) | 168,898원 | 0원 | 168,898원 |
🏨 호텔 (나이아가라) | 201,885원(취소불가) | 0원 | 201,885원 |
🚂 암트랙 (뉴욕>워싱턴) | 63,158원 | -19,958원 | 43,200원 |
Total | 2,531,541원 | -409,638원 | 2,121,903원 |
맺음말
유례없는 비상사태 때문에 여행업을 비롯한 많은 업계에서 고통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 여행을 취소하게 되면서 금전적 손실를 보긴 했습니다만 지금 힘든 사람이 어디 저 혼자 뿐일까요. 이번 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인 모든 사람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여행으로 얻은 교훈도 있습니다.
- 모든 예약은 돈이 들더라도 취소가능예약으로 하자.
-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여행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교훈이다.
이런 교훈을 얻은 것 만으로도 아주 손해는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새 식구가 생길 예정입니다.
원래는 뉴욕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반려묘🐱를 맞을 예정에 있었는데, 여행이 취소되면서 그 시기가 좀 더 앞당겨지게 되었거든요.
4월 중순에 내게 올 새 식구의 이름은 브루클린2세, 줄여서 브이로 정했습니다. 이번 뉴욕여행 준비가 제게 남긴 교훈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말이죠.